"오빠 그거 봤어요? 차 정말 싸게 나왔던데, 한 대 사세요."
"그래요~ 몇년씩 계실텐데, 지금 사람들 귀국하는 시기에 사야 이득이예요."
미국에서 생활하다보면 차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대도시야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어서 그나마 자가용의 필요성이 크지 않지만, 시골 동네에서는 버스 한번 타기가 어렵다. 한시간에 한대는 기본이요, 그나마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는 도로사정으로 시간 못맞추는 일이 예사이다. 뿐만 아니라, 주위에 마트가 없는지라, 가끔씩 가는 대형마트에서 몇주간 사용할 생필품이라도 사오려면 이 많은 짐을 가지고 버스를 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요즘같이 땡볕이 내리쬐는 날이면...그늘하나 없이 황량한 도로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일사병이라도 걸리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도 이런 마음에 차를 한대 구입할까 하며 귀를 세우던 일이 종종 있었다...보험료는 얼마인지...차값은 얼마인지...보험료야 우리나라의 두배지만, 가뜩이나 싼 미국차인데 경기불황으로 요즘 대폭 할인까지...거기에 기름값은 국내에 2/3정도...가끔 큰 짐을 나를 때면 주위 차를 가진 유학생들에게 부탁해야 하는 어려움...이럴때면 나도 자가용 타 볼만 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우리 아버지는 매일 왕복 4시간씩 버스타고 학교 다니셨는데...'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어린 동생들은 "그건 옛날 얘기고 지금은 첨단시대잖아요..."라며 넘기곤 한다...
그래 네 말이 맞다...지금은 첨단시대다...그땐 그래야만 했던 시대조건이 있었고, 지금은 굳이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었다...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것은, 우리 부모님 세대를 뛰어넘고 있는가...
예전보다 풍족해지고, 편해지고, 조건이 좋아졌다면...결과도 당연히 좋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그런데 나는 예전 청년의 삶을 살던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 지금 청년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그리 나아보이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고 싶었던 건...사서고생이 아니라, 고생을 이겨냈던 부모님 세대의 정신이었다...
주위에서 차를 사라고 꼬시는 사람이 많다...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차를 사면 함께 편해질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있기 때문일게다...
내가 지금 차를 사지 않는 이유는, 사서 고생하려는 것이 아니다...너희들이 싸다고 얘기하던 1만불(약1300만원)이 넘는 중고차와 교환하게될 기회비용을 고려하는 것이다.
차를 사면 편하다. 편하면 학교가기도 쉽고, 이동시간도 줄어든다. 이동시간이 줄어들면 공부할 시간이 많아진다...얼마나 많아질까?
내가 1만불과 교환할 수 있는 공부의 시간이란게 도대체 얼마나 될까...그리고 그것이 정말 1만불의 가치가 있을까...
사실 기회비용은 1만불로 끝나지 않는다...차를 갖는 다는 것은 유지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수리비, 보험료, 기름값...1만불로 끝나지 않는다...이 비용과 교환할 수 있는 건, 공부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좀 더 편안한 생활, 그리고 몇 번의 친구들과의 여행일 것이다...미안하지만 난 후자의 것을 위해 그 어떤 것도 지불하고 싶지 않다.
짠돌이가 아니라, 합리적인 경제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다.
또 한가지 의문!! 도대체 1만불의 가치를 어떻게 알고 있길래 싸다고 이야기하는 걸까...ㅎㅎ 1300만원...과연 자신이 직접 벌어본 적은 있을까? 마치 자기 돈인것 마냥 쉽게 이야기 한다...
그래, 여기서 공부하고 나가면 1300만원이야 쉽게 벌겠지...그런데, 네가 1300만원을 벌때까지 너에게 들어간 교육비는 생각해본 적 없니? 1300만원보다 훨씬 많이 들어갔을 텐데...그 많은 비용을 투자해서 공부한 후에, 고작 1300만원을 벌었다면...밑지는 장사 아닐까?
평생 동안 벌 수 있는 돈은 더 많다고? 에이~ 그렇게 번 돈은 결국 너를 위해 쓸거잖아...생활하고 마음껏 누리고...내 말은 더이상 부모님에게 빚지지 않고 네 생활을 유지하면서, 그동안 너에게 들어간 돈을 갚을 수 있냐는 거지...그래야 겨우 본전 아니겠어?
요즘 대학생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연봉이 어쩌니 저쩌니, 결혼은 재산을 봐야 한다느니...마치 경제개념이 매우 뚜렷한 것처럼 말한다...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도 요즘 세대를 경제개념이 뚜렷하다고 평가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평가에 반대한다...오히려 요즘 사람들은 경제개념이 흐리멍텅하다...단지 숫자만 셀 줄 알았지, 숫자 하나에 어떤 교환가치가 담겨있는지는 모른다.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사람은 자기 주제를 알아야 한다. 자신의 상태가 어떠한지, 능력은 얼마만큼인지, 자신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이것들을 알아야 자신이 계획했던 주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사람은 주제를 알아야 인생의 주제를 찾을 수 있다...자신이 이런 재화와 도움을 받아도 되는 주제인지...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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