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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낡은서랍속바다/균형잡기~홋!홋!

Who are the real progressive?

몇일째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사 하나가 있다.

3개과목 복수전공 여대생 과로사

시험기간 1~2시간만 수면… 로스쿨 준비 병행
한 여대생이 중간고사 기간에 시험공부를 하다 기숙사에서 사망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3개 과목을 전공할 만큼 학구파 여대생이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21일 오후 9시30분쯤 유명 사립대 경영학과 4학년 Y(23·여)씨가 학교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23일 밝혔다.
Y씨와 같은 방을 쓰던 미국인 교환학생 H(19)씨는 “사고 당일 책상에 앉아 공부하던 Y씨가 ‘피곤하다.’고 했었다.”면서 “40분 정도 기숙사 옆방에 다녀왔는데 고개를 뒤로 젖힌 Y씨가 숨을 쉬지 않아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고 평소 부정맥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Y씨는 경영학 외에 제2 전공과목으로 경제학과 법학을 선택해 공부하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관계자는 “3개 과목을 전공으로 공부하는 학생은 매우 드물다.”면서 “평소에도 공부를 악착같이 하던 학생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Y씨는 숨지기 하루 전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시험공부가 힘들고 어렵다. 잠을 2시간밖에 자지 못하는데도 잠이 오질 않는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Y씨의 집은 서울시내에 있지만 공부에만 전념하기 위해 기숙사 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친구들과 학교 관계자는 “Y씨가 숨지기 전날에도 시험공부를 하느라 잠을 1~2시간밖에 자지 않았다.”면서 “Y씨는 평소에도 같은 방에서 지내는 친구의 수면에 방해가 될까봐 기숙사 안에 있는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했다.”고 전했다. Y씨의 발인식은 23일 오전 대학에서 진행됐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출처: 서울신문 2009.10.24]

작년 토플학원을 다닐적, 선생님들께서 농담처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여러분,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공부하세요. 공부하다 죽었다는 사람 아직 못들어봤어요."

그땐 말하는 선생님도, 듣는 우리들도 농담으로 가볍게 넘겼는데, 정말 한 학생이 시험을 준비하다 과로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 역시 주위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이런 이야기를 종종하곤 했는데, 이 기사를 보는 순간 고인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이야기를 절대로 입밖으로 꺼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기사가 몇 일째 나의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는 또 다른 것이다.

비록 고인에 대해 아는 것은 기사내용이 전부이지만, 고인에 대해 안타까움과 더불어 '존경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단 하나도 전공하기 힘들다는 전공...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경쟁률과 엄청난 공부량을 자랑하는 상위 3과목...경영, 경제, 법학...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4년동안 견뎌왔던 고인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과연 우리는 단 한가지를 위해, 자신의 하루를, 그리고 자신의 한달을, 자신의 1년을 고스란히 바쳐본 적이 있는가...

쉽게 'Yes'라고 답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가지 가이드라인을 정하도록 하자. 이 이야기는 나의 친구가 나에게 전한 선배의 이야기다.

"시험기간만 되면 그 선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어. 중간고사 기간만 되면 그 전에 식빵 몇 봉지를 사들고 기숙사 방에 들어가서 2주동안 나오지도 않더라. 밥해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우유랑 식빵 먹으면서 버틴데...물론 몰골이 말이 아니지...근데 그 선배보면서 이런 생각들더라...공부는 저렇게 하는거구나..."

다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의 친구가 전한 이야기에 나오는 선배처럼 산다는 가정하에, 단 한가지를 위해 하루를...아니 단 일주일만이라도 저렇게 살아본 적이 있는가...조금만 건드려도 세상 무너지는 것처럼 난리치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저렇게 살아본 적이 있는가...

어떤 이들은 나이가 들고 세상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세상만사 모든 문제의 원인을 사회로 돌린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자신과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에게는 콧방귀를 날린다. 상대방을 노력의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분류법으로 나누어 버린다. 그나마 반대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조금(?) 나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신념이 '가장 우월하다'는 가정 하에 상대편의 이야기를 듣는다. 마치 어린아이 투정을 들어주는 듯 말이다.

또 다른 이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사람들의 의식에서 찾는다. 알 수 없는 언어유희를 나열하며, 자신들끼리의 언어로 세상을 비웃는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최선의 선전방법은 감동이다. 사람들의 감정을 흔들면 누구든지 동조해 줄꺼라 착각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한가지! 만약 이런 감동적인 선전에 논리적인 비판 댓글이 달리면 그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세상이 척박해졌네요...' 푸훕...그들은 혹시 난독증을 앓고 있는 것일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그래서 사람을 분류하기 이전에, 그 사람의 노력과 성과를 가장 우선으로 평가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고인을 죽음과 '청년실업, 학벌사회'와의 상관관계를 논하기 이전에, 고인이 열심히 살았던 그 삶의 모습 자체로 존경과 애도를 보내고 싶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